2020. 1. 26. 21:08ㆍDays
부산 서면 교보문고에서 아빠의 생일선물로 만년필을 샀다.
아빠는 한번도 생일선물로 뭘 받고싶다고 말을 하는 분이 아니셔서 매년 생일 때 마다 고민을 많이 했던 터라 올해 생일 때 아빠가 "만년필 촉이 닳았는데.. 이 참에 새 만년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해 준 것은 너무 고마운 일이었다.
그런데 만년필을 사려다 나는 10년 넘게 만년필을 써 왔다는 아빠의 말에 더 놀랐다. 10년 전에도 나는 아빠와 함께였고 잠시 교환학생, 외노자 생활을 했던 때 빼고는 한번도 아빠의 곁을 떠난 적이 없었는데 10년이나 만년필을 써 왔다고?
속상한 날이면 직장에서 내가 힘든 건 아무것도 모르는 부모님이라며 투정을 부렸다. 늘 집에서의 모습만 봐서 내가 일할 때 어떤 힘든 것들이 있는지 모르지 않냐고 못난 소리를 해 왔던 나였는데 정작 부모님을 몰랐던 건 나 아닌가.
부모님께는 늘 아련한 마음이 있다. 너무 사랑하고 존경하고 좋아하는 분들이지만 나와 가치관이 다르거나 내가 제대로 부모님을 설득시키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때면 마음이 이상한데로 튀어서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많이 해 왔기 때문에.
이번에 만년필을 고르면서 나는 아빠가 10년이나 써 왔다는 만년필에 대해 일자무식이고, 인터넷을 뒤져봐도 어떤 만년필에 어떤 장점이 있는지 왜 이 만년필이 명성이 높은지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한참을 매대에서 서성이다 결국 아빠에게 어울릴 것 같은, 그리고 아빠의 딸인 내 마음에 드는(?) 만년필을 골랐다.
구입한 지 얼마 안되었을 때는 각인 서비스가 무료라고 해서 서체부터 내용까지 매장 직원분과 상의해서 각인서비스 신청을 했다. 설날이 끼어있어서 한참 걸릴지도 모른다던 서비스는 2주? 정도 걸려 도착했고 각인 서비스가 완료되어 서면 교보문고 지하1층에서 보관중이라는 문자메세지가 왔길래 설 다음날 매장에 가서 만년필을 받았다.
요즘 있어보이는 사람들은 풀네임을 기재하지 않고 H. S. Kim 처럼 약자를 사용한다는 말도안되는 소리를 아빠에게 하며 만년필을 건넸는데 아빠가 너무 좋아해서 나도 기분이 좋았다. 부모님이 나에게 해주신 것의 0.1%도 안되는 일을 해도 부모님은 이렇게 좋아하신다. 앞으로도 아빠가 이렇게 웃는 날이 많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