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5. 08:00ㆍFashion
무분별한 소비에 대한 반성, 안 입는 옷들로 채워진 옷장은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다.
6년차 직장인으로 살면서 나 역시 '시발 비용'을 많이 지출했다. 사무직 직장인으로 살면서 꼭 필요한 일에만 돈을 쓰며 살아가는 것 만큼이나 대단해 보이는 일이 없다. 내 주변을 살펴보면 대체로 자아 존중감이 높고 목표의식이 뚜렷한 분들이 현명한 소비(필요한 부분에 돈을 쓰면서도 돈을 잘 모으는 것)을 잘 했다. 버는 만큼 쓰면서 '그래도 대출 안받고 번 데서 쓰는게 어디야~' '다 이러려고 버는거지~' 하는 자기 합리화로 매일 매일 카드를 긁었다. 지나치게 과소비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또 현명한 소비를 한 것도 아니었던 내 6년. 도대체 그동안 나는 무엇을 그렇게도 샀을까? 좋은 소비란 필요한 것을 사는것과 만족감을 주는 것을 사는 것 이라고 생각하는데 과연 내가 구입한 것들이 나에게 필요하고 또 만족감을 주었을까? 아닐 때가 더 많았다. 특히 옷이 그랬다. 옷은 내가 좋아하기도 하고 매일 입기도 하니까 다를거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옷장은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어느날 갑자기 현타가 왔다. 세일 한다고 어울리지 않는 옷을 샀다가 태그도 떼지 않은 채 옷장에 넣어두었던 옷을 발견하거나, BEST에 올라와있다고 깔별로 쟁였다가 소재가 마음에 안들어 입지 않게 된 옷, SPA 브랜드의 이미지만 믿고 샀다가 결국은 안어울려서 넣어둔 날이 더 많았던 옷들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이런 소비는 나에게 만족감을 주기는 커녕 모욕감만 줄 뿐이었다. 하루 근무로 벌어들인 내 돈의 절반을 블라우스 한 장이 가져가고도, 옷장에서 폐기물이 되어 있으니 그 현타감은 이루 말할 것도 없었다.
'옷 장에 옷이 많은데 왜 입을 옷은 없을까?'
옷장으로 모욕감을 느낀 지 얼마 되지 않아 궁금증이 생겼다. 핫하고 예쁜 옷들에 '투자' 하여 내 곳간을 채웠는데, 왜 매일 아침 출근 시간에 옷을 고르느라 시간을 쓰고 친구를 만나러 가서 마음에 들지 않는 착장에 거울만 들여다 봤을까? 모델이 입었을 때 힙해보였던 옷이 왜 우리집에 오니까 못 입는 옷이 됐을까? '옷 장에 옷이 이렇게 많은데 왜 입을 옷은 없을까?' 내가 실제로 던졌던 나에 대한 의문들이다. 옷이 없어서 못 입는 것도 아니고, 내가 코디에 무지해서 못 입는것도 아니고, 옷에 문제가 있는것도 아니었다. 대체 문제가 어디서 시작된걸까, 나에게 깊은 고민이 시작되었던 순간이다.
새로 사면 다를 줄 알았는데, 입던 옷에만 손이 간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예쁜 신상 옷을 사서 집으로 돌아와 옷장에 걸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신기하게도 지난 주에 입었던 옷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가디건에 손이 갔다. 어제 산 옷을 입고갈까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지난 주에 입었던 가디건이 품도 잘 맞고 어느 하의에나 잘 어울려서 예뻤다. 그렇게 나는, 그 옷을 두번 다시 꺼내 입지 않게 됐다. 반면 아무 생각 없이 컴퓨터 의자에 널어놓기만 했던 가디건은 오늘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입고 있고, 인스타그램에 올라간 내 사진 중 3장 이상이 이 가디건을 착장하고 있는 사진이 되었다. 이 가디건은 딱히 비싸지도 않고, 엄청난 유행을 겪지도 않았으며, 커다란 기대감을 가지고 구입하지도 않았고, 그저 정말 우연히 원피스 코디컷을 보고 세트로 구입했다가 '얻어걸린' 옷이었다. 그런데 이 얻어걸린 옷 한장이 나에게 커다란 교훈을 주었다. 이 가디건은 그냥 가디건이 아니라 '내 몸에 잘 맞는' 가디건인 것이었다. 유행하는 크롭탑도, 언더붑도, 힙한 로우라이즈 바지도 그 어떤것도 아니라 우연히 구입한 2만원 짜리 베이지색 아크릴 가디건이 내 인생템이었던 것이다. 유행하는 옷들을 40만원치 사는 것 보다, 이 옷이 헤질 때 마다 같은 옷을 20번 구입하는 것이 나에게는 폐기물을 줄이는 방법이 될 수 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서야 나는 그 무엇보다 '나에게 맞는'옷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유행을 좇는 것이 나쁜 것인가?
유행을 좇는 것이 꼭 나쁜 일은 아니다. 유행하는 옷이 나에게 잘 맞는 스타일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나 역시도 하이웨스트 바지를 만나기 전까지는 슬랙스 유목민이었다. 남들은 좋다고 좋다고 하는데, 나는 아무리 입어도 안 어울리는 것 같고.. 슬랙스는 내 옷이 아닌것만 같아서 인터넷으로 샀던 슬랙스 중 반품한 것도 많았다. 유행을 좇는게 나쁘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그래서 현재 유행하는 옷이든 과거에 유행했던 옷이든, 옷에 관심이 있고 잘 입고(잘 사고(buy)) 싶은 사람이라면 최대한 많은 옷을 도전해 봤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다만 그것을 바로 결제하지 않고, 귀찮더라도 발품을 팔아서 많이 입어봐야한다. 정말 많이 입어보고 소재도 알아봐야 알 수 있다. 어떤 옷이 자신의 피부에 맞고, 어떤 옷이 자신의 체형에 맞고, 어떤 옷이 자신의 매력을 2배로 발산시켜주는지를 말이다. 나는 골반이 작으면서도 허벅지는 튼튼해서 다리가 얇은 사람들에게 잘 어울리는 스키니핏 바지를 입으면 몸매가 정말 못나 보인다. 심지어 저체중으로 판단되었던 코로나 시기에도 스키니 진은 나에게 처참한 핏을 안겨주었다. 단지 마르고 뚱뚱하고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나에게는 3가지 방법이 있다. 1번은 운동을 통해 원하는 몸매로 만드는 것(옆벅지를 키워서 엉덩이~골반이 힘있어 보이게 하는것), 2번은 나 자신을 비하하며 끊임없이 남을 부러워하는 것, 3번은 이런 내 몸의 매력을 살려주는 옷을 찾아 입는 것! 나는 3번을 택했다. 1번도 병행해봤지만 내가 원하는 몸매가 되려면 식이도 극단적으로 조절하고 근무시간을 제외한 모든시간에 힙업운동을 해야할 것 같았다. 그러기엔 에너지가 부족했다. 결국은 내 체형에 맞는, 나에게 맞는 스타일링을 선택했고 지금까지도 후회가 없다. 나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었고, 옷을 고르는 데에도 자신감이 붙어서 이제는 폐기물이 되는 옷을 구입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다! 유행하는 옷 중에서도 나에게 잘 맞는 스타일들을 골라 입고 있어 쇼핑하는 재미도 여전히 느끼고 있다. 유행을 좇으면서도 오래도록 질리지 않고, 나에게 잘 맞아 손이 많이 가는 옷을 고르는 것! 그것이 내 삶의 재미가 되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이 즐거움을 같이 나눌 수 있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나는 이 기쁨을 다른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양질의 옷을 쉽게 고르고, 넘쳐나는 패션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오래도록 지속가능한 나만의 슬로우 패션을 찾는 것을 도와주고 싶었다. 내가 옷을 사면서 겪었던 시행착오도 공유하고, 좋은 옷들을 많이 파는 쇼핑몰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유행하는 스타일을 자신에 맞게 코디할 수 있도록 많은 코디컷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무직인 나에게 플랫폼은 유튜브나 블로그와 같은 SNS 매체 뿐이었고, 그래서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의 목적을 잊지 않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양질의 정보를 찾아볼 수 있도록 더 많이 노력해야겠다 😀 다짐하며 마무리하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