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헵번 그리고 지방시(그리고 티파니)

2023. 3. 13. 08:00Fash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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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nchy’s clothes are the only ones I feel myself in. He is more than a designer, he is a creator of personality.”
나 자신이 되는 유일한 시간은 지방시의 옷들을 입었을 때에요. 지방시는 그저 한 명의 디자이너가 아니라 한 사람을 창조하는 일을 해요. - 오드리헵번

 

#1  허리에 굵은 벨트가 들어간 플레어 스커트는 '헵번스커트'라고 불린다   

 

로마의휴일

 

 

 오드리헵번이 전세계적인 스타덤에 처음으로 오른 것은 우리가 잘 알고있는 영화 '로마의 휴일' 에서였다. 부러질 것 같이 가녀린 허리가 그 당시에 미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만들 정도였다고 하니 그녀가 세계에 뿌린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로마의 휴일이 개봉된 해는 놀랍게도 1953년, 우리 아빠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다(?).. 나에게 까마득한 옛날인 이 시절에 나온 영화에서 오드리헵번이 지금 봐도 스타일리쉬할 수 있다니 클래식의 힘은 위대하다. 특히 그녀가 로마의 휴일에서 아이코닉하게 입고 나오는 벨트가 굵은 플레어 스커트는 오늘날 쇼핑몰에서 팔아도 무척 잘 팔릴 것 같은 예쁜 스타일이다. 종종 이 스커트를 '헵번 스커트'라고 표기한 쇼핑몰들을 봤다.

 

헵번스커트
대충 요런 느낌.. 헵번 스커트의 시작은 로마의 휴일이었다고 본다.

 

오드리헵번은 '로마의 휴일'이 개봉되기 1년 전인 1952년 뮤지컬 '지지' 초연에 캐스팅 되기 전까지는 전쟁의 후유증이 남은 세기에 무명의 발레리나 중 1명으로 파란만장하게 살았었다고 한다. 이렇게 예쁜 그녀도 170cm라는 큰 키 때문에(?) 발레를 포기하게 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던 그녀가 출연작 성공으로 인기를 얻어갈 때 쯤, 그녀를 완성시켜준 사람이 지방시다.

 

#2  오드리헵번이 살면서 가장 잘 한 선택, '사브리나'   

 

 

사브리나

 

 로마의 인기를 그대로 이어가던 오드리는 1년 뒤 1954년 영화 '사브리나'를 주연하면서 처음으로 패션 디자이너 지방시(위베르 드 지방시, Hubert de givenchy)와 작품활동을 같이 하게 된다. 오스카 최고의 드레스상을 이 영화가 수상하게 되면서 지방시와 오드리헵번은 40년 소울메이트의 길을 걷게 된다. ※'사브리나' 이후 오드리헵번은 출연한 영화마다 지방시의 옷을 입었다. 

 

사브리나
영화 사브리나에서 부잣집 운전기사의 딸을 연기한 사브리나

 

 입술넥 라인과 간결한 롱 원피스, 그리고 그녀의 아이코닉한 얇은 허리에 딱 맞게 제작된 지방시의 드레스는 이후 오드리의 끊임없는 사랑을 받아 대부분의 오드리헵번 사진에 이런 라인의 원피스가 착장되어 있다. 지방시 그 자체의 디자인이지만 동시에 '오드리 라인'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 것 같은 아름다운 선이다. 지방시는 생전에 오드리를 만나 자신의 모든 능력치를 이 오드리 라인(내가 지어낸 명칭;)을 만드는 데 평생 쏟아 부은게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지방시 브랜드의 가치가 충분할 정도로 40년 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브리나 팬츠 지방시

 

 지방시는 오드리에게 드레스만 입히지 않았다. 발레리나로 단련된 유연한 몸과 다리라인에 꼭 맞는 '사브리나 팬츠' 역시 지방시가 제작한 카프리 팬츠다. 사브리나 팬츠 스타일은 이후 플랫슈즈와 함께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2023년을 사는 내가 봐도 너무 예뻐서 따라하고 싶었는데, 오드리의 다리라인이 안나오니 예쁘게 안 입어져서 일시적으로 포기한 상태다..ㅎㅎ (나중에 재도전) 이렇듯 오드리헵번만의 다양한 색깔을 찾아주기 위해 지방시는 많은 노력을 했다. 

 

#3  뮤지컬 영화 '퍼니 페이스'는 오드리와 지방시를 위해 만들어진 영화   

 

 

화니페이스

 1957년 'Funny Face' 영화에서 오드리헵번은 다시한번 지방시와 협업한다. 우리나라 OTT에서 '화니페이스' 라고 번역되어있는 걸 봤는데 마음이 편안하기로는 '퍼니 페이스' 가 좀 더 한국적이다.(?) 

화니페이스

영화 포스터가 간접적으로 보여주듯 이 영화는 미국의 뮤지컬 영화다. 조지 거쉬윈이 1927년에 발표한 '퍼니 페이스' 라는 뮤지컬과 같은 제목을 가지고 있고, 해당 공연에서 주연을 맡았던 프레드 아스테어가 그대로 주연을 맡았는데 줄거리는 원작과 전혀 다르다.

화니페이스

 유명 패션 잡지회사의 사장과 사진작가가 패션쇼를 준비하기 위해 바쁘게 돌아다니는 장면이 연출되는 '퍼니 페이스'는 헵번과 지방시가 만들어낸 한편의 콜라보 광고 같았다ㅋㅋ 발레리나 출신의 오드리가 아름다운 지방시의 드레스를 입고 춤선이 예쁜 동작으로 사진촬영을 하는 장면들은 두 사람의 매력 시너지를 폭발시키기에 충분했다. 헵번이 자주 맡는 순수한 여성 이미지 역시 지방시의 깔끔하고 간결한 드레스 라인에 무척 적합했다. 

 

#4  티파니와 지방시의 PPL이 들어가고 오드리헵번이 주연한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지방시와 헵번이 콜라보한 영화들은 하나같이 성공가도에 올랐다. 티파니에서 아침을 촬영 당시에는 이미 사브리나와 퍼니페이스에서의 엄청난 인기가 완성된 절정의 시기였을 것 같다. 계속해서 성장하는 과정에 있다보면 절정에 이르렀을 때 한번은 꺾이는 시기가 오곤 하는데 '티파니에서 아침을' 개봉은 이런 고정관념을 깨 부수기라도 하듯 성공가세를 이어갔다. (오드리 개인의 인생에서는 어려운 시기가 있었을 지 모르겠지만, 이 둘의 콜라보에서 만큼은 실패가 보이지 않는다.)  티파니에서 아침을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등장하는 오드리와 그녀가 입은 지방시 드레스는 첫 장면부터 관객들에게 웅장함을 줬을듯. 흔히 우리가 말하는 리틀 블랙 드레스의 시초는 바로 이 영화에서 나온 것이다. 

 

티파니에서 아침을

 그녀가 연기한 할리는 부잣집 딸이 아니다. 오히려 몸을 팔아 돈을 버는(?) 남자나 아시아계 사진작가와 같이 생계형 근무를 하는 사람들이 사는 건물에 같이 사는 비밀스러운 도둑이다. 그런 그녀가 티파니에 매료되어 한껏 차려입고 티파니에서 빵과 커피를 먹는 이 장면은 모두에게 지방시와 헵번의 위력을 다시한번 되새기게 했다. 사실 티파니에서 아침을 이후에 찍은 영화들은 내 기준에서 봤을 때 한국에서는 그렇게 유명하지 않은 것 같다. 그렇지만 사브리나, 퍼니 페이스, 티파니에서 아침을 이 세 작품만으로 그들이 60년 째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그들은 분명 생에 가장 큰 미션을 함께 해낸 것이다.

 

#5  직장동료와 40년 동안 소울메이트 할 수 있다?    

 

오드리헵번과 지방시(Hubert de Givenchy), 1982년 파리

 

 내가 아직 채 살아보지도 못한 40년 간 소울메이트가 되었던 오드리와 지방시. 혹자는 약혼을 했다고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지방시는 게이였다는 얘기도 하고 이래 저래 설이 많지만, 진실은 두 사람만이 알고 있지 않을까- 약혼을 했다 결혼식을 취소했든 뭘 하든 팩트로 보이는 것은 두 사람이 40년 간 그 우정을 변치않고 간직해 8편의 작품을 함께했고, 오드리가 생을 마감할 때 까지도 두 사람의 관계가 변함없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직장동료(?)로 만나 40년 간 소울메이트로 지낸 것인데 나는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두 사람이 어떻게 그 관계를 이어나갔는지가 정말 궁금하다. 오드리가 성공가도에서 지방시의 드레스에 감 놔라 배 놔라 했을수도 있고..ㅋㅋ 지방시가 오드리의 체형에 맞는 옷을 만들다 재미가 없어져서 갑자기 튀는 스타일로 전향하거나 다른 뮤즈(?)를 만나 함께하지 못했을 수도 있는데 두 사람은 처음 사브리나를 통해 협업했던 그 모습 그대로 40년을, 성인이 된 이후에 어쩌면 평생을 함께 일했다. 그것 자체로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엄청난 끈끈한 관계를 이어나간 것이다. 이 정도면 오드리가 왜 지방시에게 그저 한명의 디자이너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격을 완성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는지 알 것도 같다. 

 

지방시와 오드리헵번
퍼니페이스 촬영을 위해 오드리헵번의 드레스 매무새를 만져주는 지방시(1957)

 

 누구 덕을 누가 본 것일까? 지방시는 1951년 디자이너로 데뷔했고, 오드리는 1952년 뮤지컬 지지를 통해 발레리나로 실패한 자신의 커리어를 다시 쌓아가고 있었다. 그 누구도 먼저 성공하여 다른 사람을 치우치게 끌고나가지 않았다. 나는 이 점이 오드리와 지방시의 관계에서 가장 재밌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중 누구라도 "내 덕에 니가 뜬거야~" 라고 생각했다면, 둘 사이에 이런 끈끈한 관계가 작품세계에서 시너지로 나타나지 않았을 것 같다. 누군가 자신의 매력을 잘 찾아내고, 그것을 잘 드러내는 이미지로 만들어 준다면 기분이 어떨까? 그리고 내가 자신있는 작업을, 자신의 성격을 입듯이 잘 소화해내는 사람을 만나는 기분은 또 어떨까? 나는 두 사람이 서로가 필요로 하는 요소들을 서로에게 긍정적으로 전달하며 평생을 살았던 것 같다. 나는 둘 중 지방시로 살고싶다. 누군가가 자신의 매력을 잘 드러내고, 소화해낼 수 있도록 그것을 발견하고 이끌어내는 작업을 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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