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7. 21. 22:02ㆍDays
07.21
부경 유니버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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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 공부 끝내고 집에 오면서 허리가 많이 굽어진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 곁에서 짐이라도 좀 덜어드리고 싶었는데
예상치못한 도움에 되려 할머니가 불편하셨을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계속 나더러 "시간을 뺏어서 미안하다" 고 하셨고 나는 그럴 때마다 아니라고 괜찮다는 말만 반복했다
우리는 그렇게 50m도 안되는 거리를 한참이나 걸려 걸었고
결국 내게 너무 미안해하시던 할머니는 내게 이만하면 됐다고 정말 고맙다고 하셨다
불편해 하실까, 계속해서 이것저것 이야기하던 나는 이내 할머니가 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계신걸 깨달았다
"응, 응" . 할머니는 계속 "응, 응" 이라고 대답하셨다
"사무실에 갖다놓고 가야해. 사무실앞에"
"사무실이요? 사무실이 어디에요?"
"응, 응 ... 집에 가야하는데 시간 뺏어서 어떡하노"
"할머니 이 안에 든거 뭐에요?"
"응, 응 ... 친구 없이 혼자 가나. 시간 뺏어서 어떡하노"
한참을 그렇게 대화 하다가 나는
할머니가 지금이 몇 시인지 궁금해 하신다는걸 알게되었고
봉지안에 가득 들어있는 게 나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할머니 눈빛에서 회색이 보였다는걸 알게되었다
"...뿌따"
"네?????"
"허리가.. 꼬부라지뿌따..."
".."
"시간 뺏어서 어떡하노"
할머니는 내 말을 단번에 알아들으시지 못했지만 어딘지 우리가 소통하고 있는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씩 서로 견제하기만 하는 차가운 공기에 앉아있을 때면
분명 사람들 사이에 많은 대화가 오가는데도 여기는 커다란 벽 같은게 있는거같이 느껴질 때가 있었는데
할머니랑 제대로 된 '대화' 를 한번 못해봤는데도 아주 가깝게 '소통' 했다고 느끼는 건 신기한 일이다
할머니의 눈은 예쁜 회색이었다
앞이 잘 보이시지 않는 것 같았고 우리 또래 학생들이
몇 걸음이면 건너 버릴 1차선 너비의 도로가 할머니에겐 훨씬 더 넓게 느껴지는것 같았다
할머니가 '뺏은' 내 조금의 시간이 오늘 하루 중에 최고로,
살아있다고 느끼는 소중한 시간이 되어주었다
2.
세상에 위로가 되고싶다
아주 작은 형태의 것이라도 좋고
위로를 받은 사람들이 언제라도 맘편하게 떠나가도 상관없다
이제는 떠나고 찾아오고 그런 것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저 나는 한쪽 틈새에 앉아있고
지친 사람이 와서 기대기도 하고, 세상에 못했던 욕도 하고
울기도 하고, 어디 털어놓지 못했던 마음들
돌리지 않고 그대로 표현해도 좋고
미움받을 까 봐 입 밖에 내지 못했던 말들
이목에 신경쓰지 않고 내게 속 시원하게 털고 가고
그렇게 따뜻하게 가고
그렇게 밝게 가고
맑게 가고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더할나위없이..